기고문/기타

발행처 세계일보 
발행일 20018-02-27 

[유엔 문서로 본 한국 재건사] “피란민들 처우 열악… 실망·분노 가득”

⑥ 맥마누스 담당관의 거제도 실태 보고서 / 흥남부두 떠난 10만명 거제에 첫 발 / 정부, 전쟁통에 먹고사는 문제 다급

/ 교육 뒷전… 맥마누스, 유엔 지원 요청

 

 

1951년 8월 28일 주한유엔민사지원처(UNCACK·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 소속 로버트 맥마누스(Robert P. McManus) 담당관이 거제도를 방문했다. 민사지원처에서 민사정보 및 교육분야(Civil Information and Education Section)를 맡은 인물이다.

맥마누스 담당관이 거제도를 찾은 것은 북한에서 넘어온 피란민, 그리고 중공군 및 북한군 포로를 대상으로 유엔 민간 교육프로그램(UN CI&E Program)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놓고 직접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포로 수용소서 목공 교육 유엔은 6·25전쟁 당시 북한군·중공군 포로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은 마치 지금의 신병교육대나 대학의 교양과목 수준으로 준비가 잘 돼 있었지만 피란민 교육은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었다고 파악했다. 사진은 6·25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목공 교육을 받는 포로들.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제공

당시 중공군 및 북한군 포로수용소가 있던 거제도는 흥남부두를 떠난 10만여명의 피란민이 첫발을 내디딘 곳으로도 유명했다. 이들 피란민 덕분에 6·26전쟁이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유엔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맥마누스 담당관은 난민수용소와 중공군 및 북한군 포로수용소, 고아원, 병원, 학교 시설 등을 둘러본 뒤 피란민 교육을 위한 기초 정보 수집을 위해 다양한 사람과 접촉했다. 그렇게 해서 피란민 아동교육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우선 그는 거제도 일대 공립학교에 피란민 어린이들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런 구상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다. 거제도의 공립학교들은 이미 넘쳐나는 어린이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상당수 학교 시설이 교육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예컨대 거제도에서 제일 큰 장승포 공립학교는 6개 교실을 제외한 모든 시설을 세브란스 병원이 관련 시설로 관리 중이었다.

현장의 열악한 상황은 이뿐이 아니었다.

교육 대상 피란민 아동은 1만여명에 달했지만 이 중에서 지난 학기에 학교 교육을 받은 이는 고작 1∼2%에 불과했던 것. 문맹률이 그만큼 높았다는 의미다. 학교 시설은 물론 교육 자재도 제대로 조달되지 못했고, 교사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임금 지급 여력도 없었다.

사실 전쟁통에 한국 정부는 먹고사는 문제가 더 다급했다. 피란민 실태 파악 및 아동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의 역할을 대신해 나선 곳은 유엔을 대표하는 민사지원처였다. 이런 점에서 맥마누스 담당관의 ‘거제도 보고서’는 한국전 당시 민사지원처가 펼친 피란민 대상 유엔 민간정보 및 교육프로그램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당시 ‘거제도 보고서’ 주한유엔민사지원처(UNCACK) 소속 로버트 맥마누스 담당관이 작성한 ‘거제도 보고서’ 내용 중 일부. 
미국 국가기록원(NARA) 자료

 

맥마누스 담당관의 보고서에서 거제도 피란민의 심리적 상태는 최악으로 평가됐다. 자발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를 탈출해 처음에는 미군에 의해 좋은 대우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가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보다 못한 처지에 놓인 것을 알고는 무력감에 빠졌다는 것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포로의 기초 생활 수준은 난민수용소보다 월등히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로들에 대한 교육도 공식교육, 비공식적 교육, 직업교육, 오락프로그램 총 4가지로 시행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맥마누스가 처음 난민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피란민들의 표정에는 좌절과 실망, 분노로 가득했다고 보고서에 기술돼 있다. 포로보다 피란민에게 더 좋은 지원이 이루어져야 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맥마누스는 7만∼8만명으로 추산되는 피란민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로 이들이 북한지역에서 의사, 교육자, 상인, 공무원 등으로 활동했던 고급 인력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전후 한국 사회의 복구도 쉽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이들에 대한 지원은 미국 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첩경이라고도 했다.

그의 바람은 뜻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피란민은 거제도에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3년 머물렀다. 거제도를 빠져나간 이들은 부산에 나가 막노동을 하거나, 전국으로 흩어져서 구두닦이, 식당일, 공사판 노동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트위터에 올렸던 글에도 이런 피란민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오래 별러 드디어 가본 ‘1950 흥남 그해 겨울’ 특별전. 영화 ‘국제시장’처럼 제 가족사가 거기 있었습니다. 전쟁통에 고향 흥남을 떠난 부모님의 막막한 삶과 피난살이로 남루했던 어릴 때 제 삶도 거기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이민룡 연구교수는 27일 “맥마누스의 거제도 보고서는 흥남철수를 통해 한국판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이뤄냈던 거제도 피란민의 고단한 삶과 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유엔의 노력을 알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취재지원=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김수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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